2001년 영남대로 탐험을 끝내고 9월에 동아리 여미사가 창단이 되었다. 여미사는 춘천교대 동아리로서 정식 등록을 하고 겨울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영남대로때와는 달리 호남대로는 출발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01년도 2학기에 터진 투쟁은 무려 66일간이나 지속되었고, 투쟁을 접은 후 우리에게 남겨진 방학은 불과 1달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여행준비는 꾸준히 진행이 되었고, 짧은 방학기간을 여행으로 투자할려는 마음을 먹고 모임 8명이 2월 5일 출발을 했다. 한마디로 힘들었다.

  탐험을 진행하면서 중도하차하는 대원들이 있어서 안타까웠고 민족의 명절인 설날도 여행을 하면서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으로 여미사는 그야말로 여행 동아리로서의 입지를 넓혔고, 또한 많은 언론들에게 소개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욱 증폭된 여행이었다.

 

 

2월 5일 (화)

 아침 7시에 일어났다. 대충짐을 챙기고 있는데 상걸이와 재용이가 나를 찾아왔다. 정신없는 가운데서 시간은 급박하게 흘렀고 8시 기차 시간이 점점다가 왔다. 다행히 택시를 잡아서 가까스로 기차를 탔다.

 언론사 게시판에 우리의 행사를 알리느라 새벽 5시까지 잠을 못잤다. 때문에 경춘선 통일호에서는 계속 잠만 잤다.

 10시가 다 되어서 청량리에 도착했다. 상걸이와 나는 즉시 서초동으로 향했고, 나머지는 서울역으로 향했다.

 국철 기차를 놓쳐서 그런지 시긴이 촉박했다. 급히 서초동에 들려서 침낭 5개와 버너를 가져왔다. 그런데 시간이 없었다. 3호선을 타고 갔지만 아무래도 11시 25분까지 도착하기는 힘들거 같았다.

 다행히 충무로역에서 환승을 하는데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기차가 왔다. 행운이었다.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일행은 엄청 뛰었다.

 플래폼 입구에는 일행들이 우리를 목 빠지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다행이도 우리는 출발시간 3분을 앞두고 가까스로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광주행 기차는 정말로 오랜만에 타본다. 서울에서 가는데 좀 지겨웠다. 자가가 일어나구 다시 자기를 반복했다.

 오후 4시 광주에 도착했다. 역시 남쪽나라라서 그런지 춘천보다 훨씬 따뜻했다. 광주에서 버스를 타고 해남으로 갔다. 해남에서 땅끝마을에 도착하니 8시가 다 되어 있었다.

 땅끝마을에서는 국토순례세계에서 서로 이름만 들었지 얼굴은 못 본 사이인 경일이 형을 찾았다.

 마을사람들은 경일이 형을 다 알고 있었다. 경일이 형네 집에서 여장을 푼 다음 난 경일이 형이랑 이야기를 하러 갔다. 서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땅끝에서의 첫날은 이렇게 지나갔다.

 

여행 설명회를 개최하는 모습(학교 휴게실)

광주행 기차안에서...

 

 2월 6일 (수)

 새벽 6시 30분에 일어났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땅끝탑으로 올라갔다. 25분 정도 산으로 올라갔는데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더웠다.

 전망대에서 동아일보에 보낼 사진을 찍었다. 일출은 못 봤지만 구름 사이로 떠오르는 해는 멋 있었다.

 사진을 찍고 곧바로 출발했다. 난 동아일보에 사진을 보내기 위해서 해남으로 가야만 했다. 처음에는 버스를 탈려고 했지만 여행의 목적에 맞게 히치를 했다.

 특히 히치를 하다가 만난 자동차 여행객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 사람도 나처럼 군대를 제대를 했는데 코란도를 몰고 다니면서 남쪽지방을 여행을 한다고 한다. 언젠간 그런 여행을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남에 도착하니 마침 장날이었다. 설날을 앞에 둬서 그런지 더욱 많은 사람이 있었다.

 시골장 특유의 활발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관에 사진을 맡기고 농협카드 지불 정지를 풀러 농협을 돌아 다녔다.

 그러다 보니 배가 출출했다. 장터에 가서 붕어빵과 찐빵을 먹었다. 2000원 어치를 먹었는데 배가 부르고 너무 많아서 싸들고 다녔다.

 사진관에서 사진을 찾고 스캔을 하려고 했는데 스캐너를 찾을 수 없었다. PC방을 돌아다녀도 군청을 찾아가도 없었다. 다행히 간판집에서 친절한 아저씨를 만나서 사진을 스캔하고 명도 조절까지 했다.

 동아일보에 사진을 보내고 OK싸인을 받았다. 내일 아침 동아일보에 여미사가 나올 것이다.

 다시 히치를 해서 다른 대원들이 있는데로 갔다. 처음인데도 불구하고 의외로 잘 걸었다. 도로를 벗어나서 논길을 걸었고 갈대숲도 건너갔다. 역시 이런게 탐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화산면까지 왔다. 화산면의 교회에서 하룻밤을 신세졌다.

 교회에 간 덕분에 예배를 가야 했지만 김치랑 깍두기도 얻을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대원들은 마음에 든다. 특히 이번 여행에도 담배피는 애들이 없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잘 따르고 불만 없이 지낸다.

 요즘에 여자애들한테 전화가 많이 온다. 여행중에 전화가 많이 오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일의 여행이 기대된다.

 

땅끝마을 전망대에서 즐거운 한때..

첫날 도로위에서 걸어가고 있는 모습

 

 2월 7일 (목)

 화산 제일교회에서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낫다. 남쪽지방이지만 추웠다.

 오전부터 해남을 향해 걸어갔다. 12킬로나 남아서 그런지 오래 걸렸다. 6키로 남은 지점에서 마을회관이 있길래 아침을 해먹을 겸 들어 가봤다. 금산리 마을회관에서 마음씨 좋은 할머니께서 김치와 쌀을 주셨다. 정말로 인정이 깊은걸 느꼈다.

 그 이외에는 걸었다. 해남에 도착해서는 군청에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동아일보 이외에도 중앙일보에도 여행동아리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이렇게 매스컴에 오르니까 정말 보람 있었다. 학교에 가면 다시 여미사가 유명해 질 것이다.

 해남을 벗어나니 지연이가 처지기 시작했다. 또한 작은 현정이는 한번울고 오히려 독이 올라서 맨 앞으로 걸을려고 했다. 벌써들 이렇게 본성을 들어내다니...

 점심은 2시쯤에 먹었다. 라면과 함께 밥 말아먹으니 속이 든든했다. 뺀질거리는 재웅이에게 한 소리를 했다. 또한 걷다가 작은 현정이가 왜 옛길은 안가냐고 항의를 한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방향으로 나한테 짜증을 내는 것이다.

 다시는 덤비지 못하게 강력하게 화를 냈다. 그러니 좀 수그러 든다. 나중에 현정이가 와서 사과를 했다.

 아직 개통되지 않은 4차선길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옆에 지나가는 차가 없기 때문에 편했다.

 저녁에 마을 회관에 들려서 잘려고 했지만 2군데에서 거절을 당했다. 힘들고 지치고 또한 매정한 인심이 우리의 마음을 허탈하게 했다.

 날은 어두워져서 밤이 되었고 배가 고팠다.

 그때 다행히 교회에 좋은 분을 만나서 고기국도 얻어먹고 따뜻하고 편하게 잘 수 있었다. 역시 하늘은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

 

 공사중인 길을 걸어가고 있는 GOD(5명이니까)

인심좋은 아줌마로부터 오뎅을 대접받고 있다.

 

 2월 8일 (금)

 교회에서 7시에 일어났다. 사모님께서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아 주셨다. 친절하게도 아치A까지 해주시면서 우리가 먹을 오이랑 떡국떡도 주셨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목사님은 우리에게 '왕인 박사 유적지'까지 봉고차로 데려다 주시고 또한 영암가는 길목인성전리까지 데려다 주셨다. 정말로 손님을 맞는게 어떤건지 손수 보여 주셨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이런맛에 여행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전리에서 5킬로 떨어진 지점에서 불티재를 향해 걸어갔다. 불티재 옛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우리 앞에 승용차 한 대가 서는 것이다.

 강진 군청 직원 2명이 내리면서 동아일보를 보고 겪려차 우리를 찾아왔다고 한다. 포카리 스웨트 1박스도 위문품으로 같이 가져왔다.

 불티재로 올라가니 차가 별로 없었다. 그것도 그런게 거의 대부분의 차들이 13번 국도로 가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월출산을 보면서 불티재를 넘었다.

 다시 13번 국도랑 합류했다. 그런데 중앙분리대가 완벽하게 쳐져 있어서 길을 건널 수가 없었다. 때문에 휴게소를 들를수 없엇따.

 현정이랑 종환이랑 같이 쉬고 있는데 뒤에 애들이 너무 처진다. 특히 지연이는 너무 처져서 한소리 해야 겠다는 생각했다. 휴게소 앞에서 지연이 한테 '네가 그렇게 쳐지니까 모무에게 피해를 주잖아'라고 했다.

 마음이 아프지만 효과는 있었다. 아마 울었을 거라 생각된다.

 영암군청에서 우리학교 게시판에 글을 올려 놓았다. 중간에 찬거리를 사러 갔을 때 슈퍼 아저씨에게 떡을 얻어 먹었다.

 영암에서 13번 국도를 따라 갈려다가 다시 우회해서 819번 도로로 갔다.

 영보리를 들어서자 교회에서 떡볶이를 해 먹을 수 있었다.

 점심을 다 먹고 상걸이가 나한테 오니니 '지연, 작은 현정'이 아무래도 집에 갈려고 한다는 것이다. 3일만에 그런 결심을 해서 솔직히 실망스러웠지만 이미 이렇게 마음을 먹었으면 끝까지 데려가기는 힘들다고 판단 되었다.

 애들에게 잠깐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하고 최종결정을 물었다. 의외로 윤호까지 간다고 해서 3명이 집에 가기로 결정 되엇다.

 막상 보내고 나니 허탈했다. 상걸이는 울기까지 했다. 학회장인 상걸이가 같은과 후배 3명을 보내는 심정은 알만하다.

 지금은 편하지만 오늘 간 3명은 차라리 안 가느니만 못할거라는 생각이 든다. 5명이라도 여행은 계속 되어야 했다.

 영보리에서 마을길을 간 후 바로 앞산을 뚫었다. 길을 개척하는게 힘들고 험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바로 탐험의 멋인거 같다

 산을 내려오고 다시 819번 도로랑 합류하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바로앞의 마을의 이장집을 찾아가니 사모님이 한마디로 거절했다.

 우리는 다시길을 걸어서 금정면으로 갔다. 면사무소에 가서 우격다짐으로 재워달라고 했다. 특히 신문을 꺼내서 보여주니까 여기저기 전화를 하더니 근처 마을 회관을 소개해 주셨다.

 이 곳 사람들은 우리를 너무나 반긴다. 마을회관도 최고이다. 보일러, 샤워시설은 물론 TV까지 나왔다. 여기오기전 면에서 야채를 사니 콩나물 값 1000원으로 파랑 양파까지 얻었다.

 이곳은 핸드폰이 불통되는 지역이다. 여자로서는 혼자이지만 꿋꿋이 잘하는 현정이가 대견 스러웠다.

 이제 최강의 5명이 남았다. 앞으로의 여행 일정이 순탄할거라 믿는다.

 

목사님께 인사드리고 난 직후.. 뒤에 보이는 산이 월출산이다.

길 없는 산 꼭대기에 올라와서(인원이 줄었다 ㅠ.ㅠ)

지은지 얼마 안된 마을 회관에서 자는 모습

 

 2월 9일 (토) 

 벌써 설날 연휴가 시작된 모양이다. 많은 차들이 우리의 곁에 지나가면서 바람을 일으킨다. 일어나니 마을 할머니께서 우리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신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아침내내 나주를 향해 걸어갔다. 잘 못걷던 3명이 가서 그런지 다들 빠르게 진행 할 수 있었다.

 교회에서 화장실을 가려고 하는데 우리를 본 목사님이 집안까지 초대해서 차와 건강식품까지 챙겨주셨다. 정말 고마웠다.

 나주 직전의 교회에서 라면을 먹고 다시 광주를 향해 출발했다. 광주를 가는 도중 갈대밭을 통과하는데 무려 3시간을 헤맸다.

 헤멘 끝에 도착한 동네에서는 개들이 풀어져 있었다. 낯선 사람이 나타나서 그런지 개들이 우리를 견제한다. 한때 개들에게 포위 당하기도 했다.

 설날이라 차들이 많아져서 어쩔수 없어 버스를 탔다.

 광주교대에 가니 먹을것이 정말 많았다. 아마 여태까지 뺀살도 다시 찐거 같다.

 총하갱회장인 97동기 현우와 나는 많이 친해졌다. 둘은 말을 놓기로 했다. 광주교대는 이번에 비권이 총학을 잡아서 많은 고민을 하는거 같았다.

 많은 안주거리와 치킨 그리고 상걸이는 빵과 초코파이를 가져와서 그야마로 끊임없이 먹었다.

 광주교대 사람들이랑 많이 친해졌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해주었다.

 여행이야기와 교대 상황등을 이야기 하면서 맥주 한짝을 다 비웠다. 나중에는 동연회장이랑 부총회장도 와서 우리와 함께 했다.

 그리고 광주교대 도착하자마자 인터넷으로 성적을 확인했다. 다행히 F는 다 같이 맞은 실습밖에 없었다. 역대 최고의 성적이었다. 물론 불만스러운것도 있지만...

 

끝없이 이어진 나주의 갈대 밭을 걸으며

광주교대 총학생회 간부들과 함께

 

 2월 10일 (일)

 광주교대 총학생회장인 현우가 우리에게 아침을 대접해주었고, 우리가는 길까지 지켜봐줬다. 헤어지기전에 귤까지 사주면서 많이 아쉬워했다. 모두들 짐을 드니 엄청무거워졌다. 아무래도 먹을 것들을 많이지고 가서 그런가 보다.

 9시에 전주교대 선아가 나를 보러왔다. 정말 반가웠고, 예전 버릇대로 장난을 많이 쳤다.

 버스를 타고 5.18공원으로 갔다. 그런데 공원으로 가는 버스는 그야말로 무법천지였다. 급정거, 불법유턴은 물론 주행코스마저 승객들이 가르쳐 줘야 했다. 참 광주버스가 박력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5.18묘역에서는 그동안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범죄를 저지를 사람들이 아직도 잘 살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꼈다.

 5.18묘역에서 나오는 길에 부녀회로부터 떡국과 커피를 얻어 먹었다. 그리고 우연히 우리학교가 있는 석사동 사람을 만났다. 우리나라는 좁다는걸 새삼스럽게 느끼는 순간이다. 또한 광주 북구청장님이 오셔서 자신이 지은 시집을 주시면서 반겨 주셨다.

 5.18묘역에서 담양으로 향했다. 담양으로 가는 도중 눈이 내렸다. 눈이 많이 와서 나 말고 다른애들은 많이 젖었다. 난 신발, 배낭, 옷이 모두 방수라서 널널하게 갈 수 있었다.

 또한 많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이날은 사진찍느라 현정이가 고생을 많이 했다.

 담양에 도착하자마자 상걸이와 재웅이가 신발을 샀다. 둘다 신발에 빵꾸가 나서 발목까지 물이 찼기 때문이다. 둘다 신발을 새로 사니 기분이 가쁜한 모양이다.

 버스터미널에서 쉬고 있는데 현정이가 울면서 왔다. 현정이 할머니가 아프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유일한 히로인으로서 정말로 잘해왔던 현정이가 대구로 떠나게 되었다. 아쉽지만 우리의 일정은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담양을 떠났다. 29번 국도를 계속 걸어갔다. 4명의 분위기가 침웅해졌지만 그래도 속도는 무지하게 빨라졌다. 특히 상걸이가 신발을 갈아서 그런지 솔솔 잘 걸어간다.

 담양읍을 지나서 용면으로 왔다. 이곳에 잘데가 마땅치 않아서 파출소에 가서 부탁했다. 파출소에서 한참 알아 봐주더니 소방서를 소개시켜 주었다.

 소방서에서 자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5.18 공원에 있는 5.18 기념탑

하룻밤 신세진 소방서 아저씨와 함께

 

 2월 11일 (월)

 소방서에서는 정말 따뜻했다. 특히 소방서 아저씨가 우리에게 많은 신경을 써주었다. 특히 부탄가스 4개와 동그란 가스 2개 그리고 쌀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모험을 하는데 새로운 아이템을 얻는 느낌이었다.

 아침부터 추월산을 향해 걸어 갔다. 42번 국도를 계속 걸었다. 특히 차량 위주의 도로로 되어 있어서 그런지 산에 올라가는데 매우 우회하느 도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힘은 들지만 일직선으로 산을 올랐다. 산에는 가시나무도 많고 예상보다 높아서 올라가는데 힘들었다.

 다 올라가니 종환이가 신경질을 낸다. 그래서 확실실히 기를 죽여놨다. 이제는 함부러 그러지는 못할 것이다.

 대채로 맑았다. 그리고 걷기에는 좋은 날씨였다.

  내장산에 들어서기 직전에 교회에서 밥을 먹었다. 장로님과 만두를 사서 배불리 먹었다. 점심 이후에는 눈과 바람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눈보라에 전진하는 셈이었다.

 그렇게 추령앞까지 왔다. 별로 오른게 없어서 금방 내려 갈줄 알았는데 내려가는 길은 전형적인 고개였다. 눈이 내려서 힘이 들기는 했지만 내장산의 절경이 정말 장관이었다. 다시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내장산에 내려오니 눈이 그쳤다. 하지만 하루종일 걸어와서 그런지 정말 피곤했다. 정읍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을 때 방향을 들여 전주로 향했다. 칠보면까지는 히치를 해서 갓다. 여기에서는 파출소에서 잤다. 파출소에 가는 순간 부임한지 3일 밖에 안되는 아저씨가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사주셨다. 파출소 옆의 자율방범 사무실에서 잤다. 설날이라서 조촐한 다과를 하러 상걸이가 애들이랑 가게를 갔는데 가게 아줌마가 불쌍한 눈으로 일행들을 봤다고 한다.

  오늘 드디어 전라남도를 벗어났다.

 

 눈보라를 헤치며 걸어가는 탐험대

드디어 전라북도다 !!!

 

 2월 12일 (화)

 오늘은 설날이다. 설날이지만 우리의 여행은 계속된다. 파출소에서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전주를 향해 걸어갔다. 49번 지방도로를 따라 갔다. 도중에 도로에서 벗어나서 마을길로 향했다. 그렇지만 잘못된 선택으로 막다른 길로 갔다. 되돌아갈 수도 없고 옆에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또한 그 주위에는 가시 덩쿨이 많이 깔려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무대포로 넘어갔다.

 그런데 정말로 험난한 길이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가시길로 온몸이 긁히고 가시가 박혔다. 가시도 여러종류여서 심지어 청바지를 뚫고 들어오는 가시도 있었다.

 특히 나와 개척을 맡은 재웅이가 많이 찔렸다. 결국 바로 논길로 5분이면 갈길을 1시간에 걸쳐서 갔다. 모두들 기진맥진 했다.

 계속해서 49번 지방도로 갔다. 차량의 숫자가 늘어난 것으로 보아 아마 귀성차량들의 숫자가 늘어난거 같다.

 49번을 쭉 따라가다 27번 국도를 만났다. 이곳에서 밥을 해 먹을려고 했는데 마을회관에 물이 나오지 않았고 그 주변집도 마찬가지였다.

 할 수 없이 빵한 조각씩 먹고, 히치를 해서 전주교대로 향했다.

 나와 재웅이가 짝이 되었는데 운이 좋게 한번에 교대까지 가는 차량을 잡았다. 교대에 들어서니까 설이라서 그런지 아무도 없었다. 형석이를 불러서 나오게 했다. 형석이가 도착하자마자 교편실 문을 열어 컴퓨터를 했다. 그동안 정보에 목말라 있었다. 그 시간 상걸이는 전주역에서 헤메고 있었다.

 모두가 모이자 형석이가 비빔밥을 대접해 주었다. 식당에서 설날 음식을 얻어 먹을 수 있었다.

 형석이가 간 다음 세이에서 우연히 만난 동연 간부(99학번)랑 이야기를 했다. 특히 상걸이가 신나했다.

 주변을 돌아다니는 수위 아저씨 때문에 빨리 잤다. 자기 직전에 수위아저씨가 우리가 잔 신문사문을 열려고 했지만 다행히 문을 잠궈나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뚫고 들어오는 가시를 헤치며...

민족의 명절 설날을 전주교대에서 지낼 줄이야..

 

 2월 13일 (수)

 드디어 설날 마지막 연휴이다. 전주교대 신문사에서 좀 늦은 8시쯤에 일어났다. 좀 느긋하게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도중에 오늘 우리가 위문할 고아원을 인터넷으로 알아 보앗따. 벌써 4명이서 여행을 한지도 꽤 된거 같다. 식사 편제를 보면 내가 밥을 하고 재웅이가 반찬 그리고 상걸이와 종환이가 설거지를 한다.

 전주교대에서 식사를 하고 커피한잔을 한 후 전주의 문화유적지로 향했다. 경기전→전동성당→풍남문순으로 갔다. 난 이미 4년전에 한번 와 본 곳이다.

 이곳 구경을 다 끝내고 오늘 알아본 새힘원으로 향하기 위해 일단 봉동행 버스를 탔다. 봉동에서 고산으로 가는데 어떤 아저씨가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고산까지 태워주셨다.

 고산 파출소에 가니까 '새힘원'까지 태워다 주신다고 했다. 우리는 먼저 귤 2만원어치를 사고 나머지는 과자와 음료수를 샀다. 모두다 9만 2000원어치 정도 될 것이다.

 그짐들을 들고 새힘원으로 갔다. 오랜만에 경찰차도 타 보았다. 새힘원에 도착하니 그쪽 선생님들이 반겨준다.

 설날기간에 이렇게 방문해줘서 고맙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우리를 무척이나 반긴다. 역시 오길 잘했다.

 먼저 식사를 하고, 머리도 감고 세수도 했다. 그건 우리 몸이 지저분해있어서 그런 것이다.

 먹을 것을 두고 아이들을 만났다.

 중증 장애아이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많았다. 이름과 나이를 먼저 물어보고 먹을 것을 나누어 주면서 친해졌다.

 특히 난 실뜨기를 하면서 원생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2시간정도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 놀아 주었다. 재활원 선생님들도 같이 좋아 하셨다.

 우리 4명이서 이렇게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좋았다.

3시가 좀 넘어서 활동을 끝내고 경증 장애인이 있는 윗 건물로 가서 안내를 받고 원장선생님도 만났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길을 걸었다. 17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643번 도로로 빠졌다. 먹을것이 하나도 없는 처지라서 아까 새힘원에 기증했던 먹을것들중 몇 개를 가져오지 못한걸 후회했다.

 어느덧 해는 저물고 있었고 우리는 늘 그렇듯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해남의 한면과 같은 이름은 화산면 파출소... 파출소 아저씨는 고민없이 우리를 받아 주었고 그렇게 일정이 끝났다.

 내일부로 이제 전라도는 빠이∼ 빠이∼

 

전주의 관문 풍납문 앞에서

경찰 아저씨들이 기꺼이 새힘원까지 짐을 실어다 주셨다.

 외진 산골 마을인 화산면(이곳 파출소에서 신세짐)

 

 2월 14일 (목)

 오늘은 발렌타인데이이다. 올해도 역시 초컬릿을 못 받나보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연무로 향했다. 2시간정도 걸으니까 전북-충남 경계가 나타났다. 드디어 전라도를 벗어나는 순간이다.

 연무를 향해서 가다보니 저 멀리서 함성소리가 들린다. 불쌍한 훈련병들... 어느덧 내 머릿속에는 3년 5개월전 내가 입대했을때가 떠 오른다. 그때는 호남고속도로를 바라보며 자유롭고 싶었는데 이제는 제일 자유로운 입장이 되어 거기를 넘어간다.

 연무에 있는 교회에서 밥을 먹고(계속되는 라면이다.) 논산으로 히치를 해서 갔다.

 논산 LG대리점에서 아예 먹통이 되어버린 핸드폰을 맡겼다. 핸드폰을 맡기고 시청으로 상걸이랑 걸어갔다. 가면서 초컬릿을 사서 먹었다.

 시청에서 잠깐 인터넷을 한 다음 관촉사로 향했다. 관촉사로 가는 길은 험했지만 가분수 석상을 보려는 마음에 끝까지 갔다. 그런데 요금이 무려 1500원 하는게 아닌가..

 이런 도둑놈들... 그냥 돌아 갔다. 논산시내를 통과해서 4번 국도로 나왔다. 가다가 빠를거 같아서 논길로 직진 했는데 결과적으로 더 돌아가싿.

 석성면에서 잘려구 해서 애들은 먼저 히치를 시키고 난 핸드폰을 찾으로 다시 논산으로 히치를 해서 갔다. 핸드폰도 찾고 잉어빵을 먹으로 슬슬 석성면으로 버스를 타고 왔다. 길이 헬갈려 다시 히치해서 다른곳으로 갈 뻔했지만 다행히 다시 지도를 보고 애들이 잡은 교회를 찾았다.

 여기오니 정말 많은 것들을 얻었다. 돼지고기 3천원어치 사러 갔다가 소고기 2만원어치를 얻었고 김치, 떡, 귤.. 정말이지 우리는 축복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부여에 간 다음 공주교대로 간다.

 

드디어 전라도를 벗어 났다.(충청남도 논산시)

바람을 맞으며 논산시내를 빠져 나오는 장면

 

 2월 15일 (금)

 새벽 4시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가 교회의 문을 여는 소리에 놀라 깨어났다. 그때부터 2시간동안 계속 예배를 드렸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정말이지 고역이었다.

 예배가 끝나자 마자 우리는 다시 잠에 골아 떨어졌다.

 오전에 부여까지는 걸어서 갔다. 가볍게 소풍온 기념으로 걸어갔다. 능산리 고분군을 보고 부여시내로 들어갔다. 부여는 발전이 더딘 고장중에 하나로서 도시전체가 유적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제시대의 유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부여박물관을 관람한 후 부소산성으로 갔다. 부소산성의 낙화암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 주었고 경치도 그야말로 절정이었다.

 4시정도 되었을 때 히치를 해서 공주교대로 갔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공주교대 총학생회장이 밥을 사줬다.

 또한 대웅이랑 중배가 와서 우리에게 술을 사주며 여행 이야기를 했다.

 

부여의 상진인 백제금동황로 앞에서..(내 표정죽임)

 

 2월 16일 (토)

 공주에서 박물관을 간다음 곧바로 걸었다. 일부러 지방도로를 따라 한적한 산골로 걸어갔다. 가다가 가게를 발견해서 과자로 점심을 떼웠다. 주인집 아줌마가 황당한 눈치로 우릴 쳐다 보았다.

 조치원 근처의 면사무소에 들어가서 좀 쉬다가 교원대로 가기로 했다. 조치원에서 미호까지는 고행 길이었다. 걷는게 지쳐서 오히려 뛰어가기도 했다. 교원대에 도착을 해서 평소에 알고 지내던 수다맨 학회장과 만나고 저녁을 먹은 후 수다맨 집에서 잤다.

  사진없음(사진기 재웅이가 잃어버림)

 

 2월 17일 (일)

 새벽 6시 수다맨이 LT를 끝내고 후배들을 데리고 오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아침 일찍 출발 했다.

 청주로 가기 때문에 해장국을 먹고, 청주로 갔다. 날도 흐리고 비까지오는 우울한 날씨다.

 청주는 위외로 컸다. 산업단지를 지나서 청주를 통과하는데 좀 힘들었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재웅이가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우연히 보게 된 백제박물관을 들르고 청주 외곽으로 나와서 히치를 했다. 재웅이랑 종환가 먼저 히치를 해서 충주까지 잘 했고, 심지어 어떤 차에서 1만원까지 얻었는데 우리는 차가 서질 않아서 증평까지만 히치를 했고 거기서 버스를 타고 충주로 갔다.

 충주 버스터미널에서 엄마가 마중을 나왔다. 먼저 근처의 온천으로 가서 온천욕을 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맛보는 편안함 이었다.

 엄마가 맛있는 고기들을 많이 해 주었다. 정말로 편하게 집에서 잠들 수 있었다.

 이날도 마찬가지로 사진이 없음

 

 2월 18일 (월)

 충주에서 원주까지 하루만에 걸어가려고 했다. 이미 이길은 내가 여행하면서 수 없이 지나간 길이고, 저번 여름에도 지나간 길이기도 하다.

 코스는 지난 여름편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드디어 강원도에 들어섰다. 원주 귀래면사무소에 가자 우리의 기사가 강원일보에 나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면사무소에서는 우리가 신문에 자주 나오는 단체라는 것을 알고 신문을 복사하고 드링크를 대접해 주었다. 또한 편하게 면사무소에서 빵을 먹을 수 있었다.

 4명의 걸음이 빨라서 오후 6시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주에서 재웅이 형이 고기를 사주셨다.

 상걸이네 가서 잠을 잤다. 저번 여름에도 와본 곳이다. 잠시나와서 희정이를 만난 후 PC방으로 갔다.

 

드디어 강원도다!!!(원주시 귀래면)

 

 2월 19일 (화)

 원주에서 출발해서 횡성에서부터 걸었다. 그냥 며칠째 걷기만 했다. 걷다가 상걸이네 어머님이 싸주신 치킨이랑 튀김을 먹었다. 걸으면서 춘천 MBC에서 연락이 왔다. 강원 365라는 프로그램에서 취재를 온다고 한다.

 급히 진행 방향을 바꿔야 했다. 취재를 위해서는 좀 흥미있는 코스를 가야 했다. 그래서 춘천으로 막바로 들어가는거 보다는 홍천을 우회해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저녁에 홍천에 도착해서 동아리 졸업선배인 경수형을 불러서 썰렁탕을 먹었다. 매일매일 얻어먹는거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수형이 수타사 근처인 동면까지 차로 데려다 주었다. 정말로 고마운 형이다.

 이날은 동면 파출소에서 신세를 졌다.

 

횡성과 홍천의 경계인 삼마치재 터널

 2월 20일 (수)

 새벽에 춘천 MBC에서 취재진이 왔다. 이때부터 우리의 모든 행동이 카메라에 찍히고 녹음이 되었다. 아무래도 걷는 내내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었다. 먼저 수타사를 가서 관람을 한 후 홍천 북부를 향해서 걸었다. 물론 방송사에서 계속 따라다녀서 신경쓰이기는 했지만 그쪽에서 주문한대로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했다.

 이 날 있었던 일은 TV자료가 있으니까 그걸 참고하면 된다.

이제 마지막 밤이다. 한 식당에서 우리를 재워주기로 했다. 방송사 분들이 우리에게 닭 도리탕을 사주었다.

 마지막 정리를 하며 잠이 들었다.

 

춘천 MBC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모습

 

 2월 21일 (목)

 마지막날이다. 그렇지만 춘천까지 갈려면 연엽산을 넘어야 했다.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었는데 정말이지 장난이 아니게 험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길이라서 그런지 방향을 찾기가 정말 힘들었다. 또한 산의 경사도 잘못 떨어지면 살아남지 못할정도로 험했다.

 산을 넘어서 원창고개로 진입을 했다.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춘천시내로 들어서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에 도착하니까 학생처 사람들이 피자를 사주셨다. 이날은 마침 오래된 친구인 주홍이가 춘천으로 오는 날이다. 모처럼 만난 친구랑 같이 닭갈비를 먹었다.

 이렇게 겨울여행은 끝났다. 투쟁 때문에 주어진 방학은 1달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한 방학을 거의 여행에 써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보람찬 방학을 지냈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고생한 연엽산 꼭대기에서 쪼개진 팻말을 들며..

 

 

설명회를 끝내고 각오를 다지는 모습... 설명회는 여행 떠나기 하루전에 개최 되었다.

나와 현정이와 상걸이가 함께 땅끝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었다.

 첫날부터 갈대숲을 헤쳐 나갔다. 이런 길이 오히려 모험심을 자극하는 장점이 있다.

 차가 지나다니는 길 보다는 사진처럼 논길을 자주 이용했다. 한적한 논길을 걸으며 많은 생각을 하였다.

 모두들 지쳐서 쉬는 모습. 2번째 국토순례인 상걸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지만 나머지 대원들은 무척 힘든 표정을 옅 볼 수 있다.

한 마을회관에서 식사를 대접받고 있는 모습.. 반찬은 거의 젖갈류였는데 전라도 특산물들을 먹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에게 식사를 대접해준 마을 회관 앞에서...

논길을 걷다보면 이와같은 장애물을 만나기 마련이다. 냇물을 건너기 위해 작은 둑을 건너고 있다.

 힘든 길에서는 사진처럼 서로 도와가며 탐험을 했다. 아스팔트보다는 이런길이 더 기억에 남는다.

공사중인 길을 가는 도중 방치되어 있는 중장비를 발견.. 뛰어들어서 운전하는 포즈를 취해 보았다.

 길 없는 산을 올라가기 전에 펼쳐진 대나무 숲에서 기념 촬영

 사진상으로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엄청난 경사였다. 자칫 하다가는 밑으로 굴러떨어질 위험이 있었다.

 산을 벗어나서 계속 걸어가니까 저녁이 되었다. 저녁 무렵 논길을 헤메고 있는 탐험대

 완공된지 얼마 안된 마을회관.. 이곳에서 편하게 하루를 지냄으로서 지친 몸에 원기를 불어 넣는 계기가 되었다.

 인심좋은 영보리를 떠나 아스팔트길로 가고 있다.

 나주에서 한참 갈대숲을 헤메고 있을 때.. 사실 이때 길을 잘못 들어서 돌아오고 있는 장면이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광주시내에 들어서자 재웅이가 아줌마에게 작업을 들어간 장면이다.

갑자기 찾아온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준 광주교대 총학생회 간부와 함께..

 총학생회장 현우는 나와 현안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다.

5.18 묘역에 위치한 박물관에서 80년당시 일어난 광주 민주화 항쟁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다. 이런곳에서도 끊임없이 필기를 하는 대장

 내장산에 들어서기 직전의 탐험대

 겨울 내장산의 웅장한 장면

 밑으로 도로는 크게 우회하고 있었다.

 내장산이 적힌 비석에서 기념 촬영.. 사실 이때 눈보라 때문에 많이 지쳐 있었지만 이제는 적응이 되는 단계였다.

내장산 중간에 있는 비석앞에서 찰칵

 내장산의 웅장함에 탐험대의 존재는 보잘 것 없을 뿐이었다.

내장산 아래에 펼쳐진 아름다운 호수에서..

 호수 주위를 걷는 탐험대 모습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던 파출소 앞에서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모습.. 주위의 모든 나무는 가시나무였다.

 1시간의 사투끝에 겨우 가시밭을 빠져나오고 쉬는 모습.. 그렇지만 또 다시 가시밭이 나타났다.

 설날을 지낸 전주교대 앞에서 기념 촬영..

 경기전에서 문화유적에 대해서 열심히 적는 대장.. 역시 대장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옅볼 수 있다.

전라도에서 가장 오래된 전동 성당 앞에서 쉬고 있는 모습

 전주이씨의 조상들이 모셔져 있는 경기전에서

 자상하게 중증 장애우들에게 초컬릿을 먹여주는 자상한 대장

 새힘원원장실에서.. 얼핏보면 하얀 점퍼의 상걸이도 장애우같이 보인다.

 파출소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재웅이.. 찰칵

 논산시를 벗어나서 논길로 가고 있는 탐험대(사실 더 우회해간 결과가 되었다.) 

 긴 거리의 논길을 벗어나서 농촌 촌락이 나타났다.

  부여의 능산리 고분군에서의 추태... 사실 내가 시킨거다.

 백제왕족들이 잠들어 있는 능산리 고분군에서의 멋진 포즈

 부여박물관 앞에서.. 200원의 관람료로 국보급 문화재를 많이 볼 수 있는 정말 백제 시대의 유물을 볼 수 있는 학습의 장이다.

 부소산성 안에 있는 옛 백제 병기창에서

 부소산성의 길을 따라 낙화암으로 가는 장면

 백제와 최후를 같이한 3명의 충신이 모셔진 사당에서 묵념을 하고 있는 탐험대

 부여시내가 한번에 보이는 전망대에서..

충주에 세워져 있는 고구려시대에 세워진 중앙탑(난 지겹도록 본 문화재이다.)

 충주~원주구간에 있는 대형 다리.. 여기서 왼쪽으로 가야 원주이다.

 우리가 서있는 지점은 충청북도 이지만 밑에 내려보이는 전망은 강원도 이다.

 귀래면 사무소에서의 우리는 거의 VIP수준의 대접을 받았다. 재웅이와 종환이가 드링크제를 먹고 있다.

 왼쪽의 재웅이와 오른쪽의 종환이가 걷다가 지쳐서 뛰고 있는 모습.. 이해가 안될지 모르지만 한 50킬로 걸으면 뛰는게 편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원주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전망대에서 쉬고 있는 모습

 수타사에서 할머니에게 길을 물어보고 있는 대장

 이날은 춘천 MBC에서 취재온 관계로 일부러라도 웃어야 했다

 홍천가는길에서 만난 장승 앞에서.

 마침 군인들이 구보를 하고 있길래 우리도 덩달아서 뛰어 갔다.

 탐험대가 제공한 음식들을 맛있게 먹고 있는 카메라맨

 남은 음식을 먹을 사람을 가려내는 가위, 바위, 보를 하고 있는 피디..(꽤 흥미있어 했다.)

 내가 취재팀과 인터뷰를 하고 있을 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탐험대.

 작가와 작별하고 있는 재웅이.. 작가는 재웅이에게 윤계상을 닮았다고 했고, 재웅이도 그러한 호의에 응했다. 여행을 하면 언제나 이런 로멘스가 있는 법이다.(으이구 추해라...)

 마지막 숙소에서 내일이면 끝날 탐험을 생각하며 활짝 웃고 있는 모습

 멋진 대장이 문자를 보내고 있는 모습

홍천에 있는 엄청난 크기의 불상

마지막 관문인 연엽산을 넘고 있는 모습.. 정말 험했다.

 그나마 계곡이 얼어있어서 계곡에서는 편하게 갈 수 있었다.

 나무로 꽉차서 빛이 별로 들어오지 않는 숲도 있었다.

 험한 절벽을 오르는 모습..

 연엽산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연엽산 꼭대기에서 기념촬여을 하는 모습.. 다시는 오고 싶지 않는 산이다.

 이제 춘천이다!! 원창고개에서 기념 촬영...

 여행이 끝나자마자 학생처분들이 따뜻하게 맞아 주셨다. 덕분에 피자도 실컷 먹었다.

 재웅이가 회장으로 확정되는 순간

 언제나 여행동아리에 열심히 활동하는 상걸이

 

 여미사 2기 대원들.. 정말로 힘든 여행을 무사히 마쳐서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