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대학에 들어와서 첫 방학이었던 1학년 여름방학때 고등학교때부터 꿈꿔왔던 자전거 강원도일주와 자전거 전국일주를 끝냈다. 때문에 2학기때는 새로운 도전을 모색하게 되었다.

 우연히 중학교때부터 친해왔던 오래된 친구 용수와 정훈이를 만나고 있을 때였다. 술을 먹다가 탐험대 출신인 용수는 청소년 국토순례를 소개해 주면서 한번 지도자로 활동해보라고 권했다.

 정말로 구미가 당겼다. 국토 최남단 마라도에서 휴전선 바로 아래인 임진각까지 걸어가는 것은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더 큰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훗날 생각하면 인생에 있어서 큰 전기가 되지 않았다 생각된다.

 걷는 여행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많이 걷는 것도 힘들지만 겨울이라는 점.. 또한 아이들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힘들었다.

 첫 국토순례 지도자로서 얻게 되는 경험은 훗날 전국에서 유일한 옛길 국토순례 동아리인 '여미사(여행에 미친 사람들)'를 창단하고 운영하는 초석이 된다.

 이번 국토순례에서 얻은게 있다면 먼저 대원들을 거느리는 법을 배웠다. 교대 새내기였던 나에게 아이들은 매일 웃어야 되며 상냥해야 하는게 최선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그건 시행착오였다. 정말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길은 바로 웃는거 보다는 평소에는 엄격하지만 뒤에서 헌신적으로 보살피는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건들도 있었다. 제일 기억나는 것은 폭설에서 텐트를 치고 자면서 무지 고생했던 기억이고, 지도자들끼리 분열되서 탐험대 자체가 엉망이 되었을 때도 있었다. 특히 탐험 막판에는 정말로 힘들었었다.

 그렇게 힘든 여행 와중에서도 내가 맡은 5,6대대 아이들을 비롯해서 힘든데도 불구하고 꿋꿋이 걸어가는 대원들을 보면 항상 힘이 났다.

 재미있는 일도 많았었다. 통제가 심하다 보니까 걷다가 똥을 바지에 싼채로 계속 걸어가는 아이가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허벅지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심하게 상처를 입었다. 그런 대원은 맡은 지도자가 손으로 똥과 엉덩이에 묻어 있는 치워줘야만 했다. 불행하게도 내가 속한 대대에 2명이 그런 아이었다. 그 외에도 기억에 남는 일이 많았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때 충격적으로 다가오고, 그 이후의 여행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국토종단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그때 조금 신경을 써서 기록을 남겼다면 정말 소중한 기록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그때 여행이 담겨있는 사진들을 보며 부연 설명을 하는 형식으로 꾸며 보겠다. 사진도 정확한 시간대의 순서로 배치 못한 것을 양해하기 바라며, 참고로 난 항상 파란 옷을 입고 다녔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18시간을 제주도를 향해 갔다.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찾아간 '자연사 박물관'

 제주도 서북쪽에 있는 한림공원에서.. 이때 비가 오고 있었다.

 남자들로 이루어진 개척대 대원들과 함께.. 초등학교 5~6학년이 주를 이루고 있고, 말썽없이 열심히 탐험한 애들이다.

 지도자 정훈이와 수민이 희선이와 함께. 지금은 옷이 깨끗하지만 탐험끝으로 갈수록 지저분해 진다.

 중앙에 얼굴 큰애는 이름이 완순이다. 몇 번 탐험을 참가한 중학교 3학년으로서 처음 탐험에 참여한 나에게 많은걸 가르쳐 준다.

 문제만 일으키는 여중학생들.. 이들 모두가 나중에 담배피다 걸리다.

 대형 하루방 앞에서

 자전거 전국일주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1학기만에 같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는다.

 국토 최남단인 마라도와의 배가 운항되는 통하는 모슬포 앞바다에서 대원들과 함께.. 뒤에 많은 동굴이 보인다.

 마라도 탐사를 마치고 제주도의 서북쪽 한림으로 가는 길은 비가 왔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대원들의 표정이 밝다.

 내가 입은 파란색 옷은 방한도 잘되고 무엇보다도 절대 물이 새지 않는다. 지금도 탐험할 때면 입고 다니는 옷이다.

 전 날 제주도 특유의 비바람이 몰아쳐서 무지 고생을 했었다.(2번째로 최악의 날로 기억하고 있음).. 하룻밤 신세진 마을회관에서 잠시 나와 바닷가에서 포즈를 잡는 모습

 모든 대원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해변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있다.

 탐험대 지도자들.. 왼쪽에서부터 석우형, 나, 설이형(앉아있는 사람), 석준, 정훈, 용수, 총대장님.. 지도자중에 여자 1명도 있었는데 사진찍기 싫어해서 가지고 있는 사진이 없다.

 제주항에서 완도까지는 3시간 30분정도 걸린다. 완도 여객선항에서부터 해남 땅끝 마을까지 돈을 각출해서 버스를 타고 갔다.

 해남에 도착한 날짜는 12월 31일 .. 파란만장한 97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땅끝마을에서는 매해 마지막날 해맞이 행사를 하는데 탐험대도 거기에 같이 참가했다. 무대를 주시하는 모습

 해남 땅끝 마을 기념비이다.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땅끝인 것이다.

 나, 수연이 희선이 용수.. 가운데 귀여운 두 꼬마는 탐험대의 분위기 메이커가 된다. 하지만 막판 평택에서 자고 있는 사이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도망을 쳐서 크게 실망을 하게 된다.(4일후 다시 돌아옴)

 땅끝마을을 출발해서 해남군으로 가고 있는 모습, 이처럼 지도자는 야광봉을 가지고 행군이 원활할 수 있게 차량 소통을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해남에서 쉴려고 대기하는 모습.. 뒤에는 바다를 등지고 있으며 가까이에 섬들이 보인다.

 처음에는 1시간 행군을 하고 10분을 쉬었지만 나중에는 2시간 3시간으로 늘어나게 된다.

 다들 추워서 꽁꽁 얼어 있다. 겨울철의 도보 여행은 항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걸을 때는 힘들기는 하지만 춥지는 않다. 그렇지만 쉴 때는 힘들지는 않지만 몸이 추워지기 때문이다.

 추월산 터널 입구에서.. 우리가 만나는 첫 고개였던 추월산 이었다. 도로에서 위험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나

 길을 가다가 문화재가 있으면 빠짐없이 관람을 했다.

 사진은 지도자들 끼리 포즈를 취하는 장면

 가끔 밤에 탈의를 하고 운동을 하기도 했다. 사진은 대원들에게 탈의를 하라고 하기에 앞서 지도자들이 먼저 웃통을 벗은 모습.. 훗날 생각해도 정말 추웠다.

 전날 산간 마을에서 텐트를 치고 잤다. 일어났을 때 다들 얼어있어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사진은 아침을 먹고 마을에서 출발하는 모습

 추월산 대둔사가는 길목에 탐험대원들이 일렬로 서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인사를 하는 장면.. 이런식으로 바른 예절 교육이 이루어 지기도 했다.

 지나가는 어른들에 대한 인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떠나는 장면

 영암에서는 죽제품이 특산물이다. 위 사진은 죽제품 박물관에서 내가 맡았던 5,6 대대 아이들과 함께

 아스팔트 보다는 이런 시골길이 걷기가 더 좋았고 안전했다.

 논산에서 공주로 통하는 길로 기억하고 있는 구간이다. 이런 비포장 도로는 걷기에 안성 맞춤이다.

 광주에 들어가기전에 기념사진.. 오른쪽에 손을 들고 있는
아이는 바지에 똥을 싼채로 계속 걸어가는 바람에 허벅지 살이 다 까져서 나중에는 차를 타면서 다녔다.

 도로를 통해서 광주로 들어가고 있는 탐험대.. 아스팔트도로에서는 무엇보다도 안전이 중요 했다.

 드디어 광주이다.. 하지만 아직도 갈길은 훨씬 더 멀었다.

 한 박물관 입구에서.. 관람을 끝내고 쉬고 있는 장면이다.

 광주에 있는 충장사로 기억하고 있다. 이런 사적지는 평소 역사를 좋아하는 나에게 흥미를 일으키기엔 충분했다. 일일이 표지판의 글을 읽고 있는 내모습이 눈에 띈다.

 송강 정철 선생이 자주 들렀던 정자라고 하는데 우리에겐 좋은 잠자리가 되어 주었었다. 사진은 짐을 정리하고 출발 준비를 하는 장면

 송강 정철 선생의 이름이 적힌 기념비에서 개척대 애들과 같이

 한 호숫가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우리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한 횟집에서 많은 빙어를 우리에게 대접해 주셨다. 각자 빙어를 입에 물며 재미있는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비디오 카메라에 담았다.

 아침에 냉수마찰을 하고 있는 모습.. 난 여기서 얼굴을 싯고 빨리 말리지 않아서 얼굴 동상에 걸리고 말았다.

 전라남도를 벗어나 전라북도로 넘어갈 때 기뻐하던 표정으로 기억하고 있다. 처음에는 도저히 갈 수 없을 것으로 여겨졌지만 목적지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사진중에 하나. 얼굴에 동상이 심해지는 것을 우려해 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항상 모자를 썼다.

 눈길을 헤쳐 가는 모습.. 낭만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스며 들어오는 눈(물)이 문제가 되었다.

 전라남도~전라북도 도계에 있는 고개.. 차들도 별로 지나가지 않아서 편하게 갈 수 있었다.

 네 왼편에 보면 등치큰 완순이가 수민(여자아이)를 챙겨주는 것이 보일 것이다. 이처럼 탐험을 하다보면 서로 의지하게 된다.

 대원들이 밥을 짓고 있는 장면.. 100인분의 밥을 지을 수 있는 솥에다가 한꺼번에 밥을 짓고 있다.

 뒤에 있는 대원들은 마을에서 얻어온 반찬들을 정리하는 모습

 이렇게 논길을 걸어 갈 때도 있었다. 좁은 길에서는 일렬로 서서 갔다.

 탐험대에는 차가 한 대와 츄레라 한 대가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보조를 했다. 어느날 방심하고 있는 사이 추레라가 밑으로 떨어져서 일으키고 있는 모습이다.

 나에게 탐험대의 존재를 가르쳐준
용수..

 지금은 중국으로 유학을 간 상태이다. 언제나 나에게 좋은 친구이다.

 어느 휴게소에서 쉬고 있을 때..

 탐험대에서 중학교 여자애들이 날 많이 따라다녔다. 처음에는 인기가 좋다고 생각을 했지만 나중에는 너무 의지하게 된다는 부작용이 있음을 알았다.

 아스팔트 도로에서의 전형적인 행군의 모습

 신발을 벗게 하고 눈위를 걷게 하는 모습.. 이런 극기훈련도 항상 병행을 했다.

 눈으로 발을 싯고 있다. 여자애들이 너무나 차가워서 울면서 발을 싯는 장면

 물집이 나서 눈으로 발을 싯지 못한 등치 큰 남자애들은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탐험하는 와중에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가우데 파란 머리띠를 하고 있는 여자애의 머리띠는 나한테 뺏어온 것이다.

 전라남도를 갓 벗어났을 때의 모습.. 비디오 촬영을 하느라 3번정도 왔다갔다 하던 기억이 난다.

 길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나.. 이미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고 보여진다.

 여기가 어딘지 기억은 안난다.. 그냥 멍하게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게 보인다.

 행군하는 도중에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이때의 경험은 앞으로도 소중하게 쓰게 된다.

 눈덮힌 산을 지나가고 있는 모습..

 아스팔트길을 걸을 때에는 이렇게 2줄로 걸어가곤 했다.

 길에서 위험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나와 정훈이.. 정훈이는 여행과는 거리가 먼 친구였지만 끝까지 묵묵하게 자신의 임무를 다 했다.

 전라북도~충청남도 경계를 넘는 순간.. 전라도를 벗어났다는 기쁨에 차있었다. 내가 입고 있는 청바지와 신발은 탐험이 끝나고 버리게 되다.

 기억이 날 듯하면서도 안난다.. 참이럴 때 답답한데.

오른쪽의 수정이가 내 야광봉을 손에 들고 있는게 이채롭다.

 전주에 있는 전동성당 앞에서..

 전동성당은 전라도에 세워진 최초의 성당이다. 4년후 여미사 탐험때도 들르게 된다.

 경기전에서 아이들과 함께.. 항상 내옆에는 여자아이들이 많이 왔다.

 탐험이 끝나기 전날 나름대로 캠프파이어를 하고 있는 모습. 임진각 근처인 자유공원에서 잤는데 근처에 있는 쓰레기통을 주어다가 캠프파이어를 했다. 표정을 보면 알겠지만 어서 탐험이 끝나는 생각만 했을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논산에서 보급품을 받고, 이렇게 젖은 침낭과 옷들을 말렸다. 보급품은 탐험 도중에 집에서 간식과 편지를 보내는데 많은 아이들이 부모님의 편지를 받고 울었다. 탐험을 통해서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자유공원에서 기상하고 있는 모습.

 역시 북쪽이라서 자는데 너무나 추웠다.

 임진각에 도착하기 전에 한 초등학교에 들러서 밥을 먹고, 우리와 탐험을 같이한 일명 똥차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드디어 임진각 도착.. 이 감격스러운 순간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22일간의 여행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힘든 여행을 마치고 가족을 만난 대원들은 저마다 울음을 터트렸다. 전날 총대장님이 '너의는 집에 가는게 아니라 궁전에 가는거야!'라는 말이 귀에 멤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