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에서 신세진 아저씨들과 함께

 

나의 생애 첫 여행(97.6.24~6.29)

 

  97년 내가 첫 방학을 맞았을 때 과감하게 강원도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지나보면 별거 아닌거 같지만 그 어느때 보다도 여행에 대한 설레임이 클때이기도 하다.

 

 강원도 일주는 전국일주와는 많은 차이점을 보엿다. 첫째는 동행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전국일주는 오직 나 혼자만이 했던거에 비해 강원도 일주는 동기인 형도와 같이 했던 것이다. 그리고 강원도 일주에서는 많은 자동차를 히치해서 갔다. 또한 장마철에 가서 많은 고생을 하기도 했다.

 

 강원도 일주는 1주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이 되자 우리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작년에 10일 동안 자전거 여행을 했다던 체육과 형들에게도 많은 조언을 얻었고, 정말로 치밀한 준비를 했다. 그러나 나중에도 알게 되지만 이러한 준비는 경험에 비추어 보면 필요없는 점이 더 많았던거 같다 여행이란 마음 먹었을 때 그냥 훌쩍 떠나면 되는 것이다.  

첫째날(6월 24일)

 

 원래는 25일에 출발해야 하지만 몸이 근질 근질한 차에 그냥 이날 가기로 결정했다. 3시에 형도네 하숙집에서 만났다. 출발 직전에 조촐한 기념식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병희가 참석했다. 기념식은 그냥 사진 찍고 샴페인을 터트린후 출발하는 것이었는데, 꽤 재미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필림이 짤리는 바람에 사진으로 남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출발은 예정대로 소양강으로 향했다. 소양강가에는 길이 정말 평평하다. 처음이라서 그런지 속도를 별로 내지를 않았다.

 

  오봉산에 들어서니 길이 장난이 아닌 것이다. 처음부터 이런 난관이 기다리다니! 계속해서 자전거를 끌고 걸어 올라갔다. 도중에 우리보다 베테랑으로 보이는 자전거 여행자가 우리를 추월했다. 계속 올라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형도가 감기가 걸렸다며 말썽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삐걱 거리다니! 그러나 갑자기 용달차 한대가 우리 앞에 멈추더니 타라는 것이다. 이 고개를 다 거칠려면 멀었으니 타라는 것이었다. 힘들었던 우리에게 정말 구세주와 같은 차였다. 그리고 내 일생에서 첫 히치였다.

 

 다음날 포터를 이용해양구~인제까지 히치

 용달차 화물칸에 앉아서 경치 구경을 했든데, 정말로 이 차를 타지 않았으면 큰일날 뻔했다. 끝도 없이 고개가 펼처졌던 것이다. 역시 강원도라서 험하다는 생각을 할 때, 차가 갑자기 멈추더니 아까 우리를 추월했던 자전거 여행객을 태웠다. 그 사람이랑 이야기 할 수 있었는데 광주에서 왓고, 춘천까지 가는데 6일 걸렸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용달차는 오봉산 휴게소에서 우리를 내렸다. 거기서 부터는 자전거를 끌고 가야 했는데, 형도가 아프다고 나한테 호소한다. 결국 우리는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엇다. 우리가 간길은 소양강을 따라서 이어졌는데, 길이 정말 구불구불해서 짜증이 났다.

 

  특히 겁도 없이 덤벼드는 날파리들은 정말로 저주하고 싶었다. 양구에서 20㎞떨어진 곳에서 식당 주인의 허락을 맡아 천막 아래에서 자기로 했다. 그때 우리는 각자 전화를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날 형도는 내가 하도 구박해서 병희에게 여행한 것을 후회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단다..

 

 형도와 함께 내린천에서 수영을...

둘째날(6월 25일)

 

 우리가 잤던 장소의 식당에서 잔 착한 아저씨들이 인제까지 태워 준다고 하셨다. 아침부터 땡잡은 것이다. 이 날부터 비가 오기 시작 했는데, 이 후로 며칠동안 멈추지 않았다. 인제쪽으로 가는 길목은 정말 구불구불하다. 양구를 거쳐 인제로 가는데 30분 정도가 걸렸다.

 

 차를 태워준 아저씨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인제읍에서 우리과 96 재희형네인 피아시로 향하기 시작했다. 비가 점점 더 많이 오기 시작했다. 30분쯤 자전거를 타니까, 재희형이 마중나왔다. 거기는 해물탕집인데 바로 앞에 내린천이 잇어서 경치가 매우 좋다.

 

  내린천에는 형도와 나는 고기를 잡고 수영도 하면서 재미있게 지냈다. 물론 몇 개월만에 푸짐한 세끼 식사도 했다. 정말 진수성찬들만 있었다. 그런데 한가지 문데가 있었다. 반경 3㎞내에는 가게가 하나도 앖었다.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그때만큼 새우깡이 먹고 싶었던적이 드믈 것이다.

 

  비는 어느덧 소나기로 변해 있었고, 우리는 집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너무나 지겨운 나머지 형도가 비가 엄청 오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출발하자고 했다. 그러나 날도 어두워졌고 재희형이 만류하는 바람에 그냥 하루 묵기로 했다. 그 집은 정말 모기가 많아서 진공 청소기로 모기를 잡을 수 있을 정도엿다. 아마 그날 수백마리의 모기를 잡았을 것이다.

 

셋째날(6월 26일)-첫째이야기

 

 형도와 나는 강릉까지 단번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말도 안되는 거리이지만 시도해 보기로 했다. 설악산의 대청봉을 오르고 싶었지만 장마철이라 다음으로 미워야 했다.

 

 전날 그렇게 떠나고 싶었던 재희형네를 떠나서 설악산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인제읍에서 설악산까지는 길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평지이다. 그러나 설악산 국립공원을 드러서는 순간 길은 갑자기 가파라지기 시작했다.

 

 한계령을 오르는 길은 여태까지 여행하면서 오르던 길중에서 가장 가파랐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끔찍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그대로 자전거를 이끌고 올라가야만 했다. 하도 힘들어서 포기하고 히치해서 올라갈까 생각했을 때, 한계령 휴게소 1.5㎞전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보였다. 1.5라는 단어는 어쩌면 사람의 심리에 작은 숫자라고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처럼 1.5가 커보인적은 없었다.

 

  5시간 동안에 걸처서 한계령 휴게소에 올라가니,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햇다. 여기서 고등학교때 배운 영동과 영서의 기후차를 몸으로 느끼게 된다. 한계령을 올라가는 도중에 날씨가 맑앗다. 그러나 내려가는 길은 그야말로 악천후였다. 쏟아지는 소나기와 심한 안개, 미끄러운길 그리고 가파른 경사의 길은 자전거를 타는데 정말 어렵게 했다.

 

  나도 하마터면 미끄러져서 낭떨어지에 떨어질 뻔했다. 그리고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을 때 정말로 죽는줄 알앗다. 그렇게 거의 다 내려왔을 무렵 완전히 U턴인 길이 나왔다. 조심스럽게 피했지만 형도는 미끄러졌다. 절대 절명의 위기였다. 

  

 한계령 올라가는 길

  

  한계령 정상 부분
(이미 구름이 깔림)

 

동해안이 보이는 3.8휴게소에서

셋째날(6월 26일)-둘째이야기

 

 엄청난 속도로 형도는 돌진해서 바위를 박았다. 걱정이 되서 자전거를 두고 뛰어가 보았다. 자전거의 앞 부분이 완전이 부서졌지만 형도는 무사했다. 일단 사람이 안 다쳐서 다행이지만, 부서진 자전거를 끌고 걸어갈걸 생각하니 정말 막막했다.

 

 그렇게 묵묵하게 걸어가려고 하는데, 그때 우리를 부르던 물레방아 휴게소 아줌마! 젊었을 때 고생도 좋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며 닭죽을 공짜로 주셨다. 형도는 사고의 충격 때문인지 별로 먹지는 않았지만 난 염치 없이 2그릇이나 먹었다. 그리고 거기 딸이랑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윤리과 96학번인 용철이형을 안다고 한다. 그 형은 나와 같은 동아리인이자 술친구 이며, 거의 친구 사이처럼 지내던 사이라 매우 반가웟다. 또한 이렇게 인연이 닿는다는 사실에 세상이 좁다는 느낌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휴게소에서 쉬다가 다시 양양을 향해서 가기 시작했다. 물론 걸어간게 아니라 히치를 해서 갔는데 맘좋은 아저씨가 양양까지 태워다 주셨다. 양양의 자전거포에 가서 형도의 자전거를 고쳤다. 시간이 꽤 많이 걸렸고, 수리비 또한 65000원이나 나왔다. 덕분에 내 자전거까지 공짜로 손봤지만, 그날의 목표인 강릉까지는 너무나 까마득하고 시간이 없었다.

 

 시간은 오호 4시 30분경이고 강릉까지는 58㎞가 남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출발했다. 비는 계속오고 이미 우리의 짐과 옷은 물로 꽉찼다. 그래도 우비는 계속 입고 있엇는데 그 이유는 추워서이다. 그때 난 여름철에도 그렇게 추울수 있다는걸 깨달았다. 강릉과의 중간지점인 주문진에서 회를 먹었는 여유를 부렸지만 저녁 7시 30분 거의 기진맥진한 우리는 차를 얻어타고 강릉까지 갔지만 막연히 온 우리는 잠자리가 막막했다.

 

 그때 정말로 지금 생각해도 착한 차주인 아저씨가 잘데가 없으면 자기집에서 자라고 하셨다. 보통때 같으면 거절했지만(?) 이미 싸가지가 없어진 우리는 OK했다. 그 아저씨는 우리를 위해서 일부러 기름차를 불러 기름을 넣어서 우리가 샤워를 하게 하셨다. 그날 빨래도 하고, 옷도 말리고 그리고 극회석우 95학번인 성용이 누나네 연락을 했다. 다음날 점심을 책임진다는 성용 누나를 믿고 난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를 재워주신 고마운분 집에서...

 

넷째날(6월 27일)

 

 우리는 집주인이 일찍 출근해야하는 관계로 빨리 출발했다. 난 근처의 재성이 집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형도는 계속해서 동해로 간다고 전날부터 그러더니, 진짜로 일어나자마자 동해로 가 버렸다.

 

 왜 서두르냐는 물음에 형도는 황당한 이야기를 했다. 그 이유는 지금 강릉 기내에 가면 옷가게를 열지 않기 때문에 지금 자전거 타고 동해로 가면 옷가게를 열시간이 되어서 먼저 간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형도는 동해로 떠나고 난 재성이네 가게 되었다. 그건 형도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재성이네 가자 재성이네 어머님이 반겨 주셨다. 재성이는 별로 반가워 하지는 않는 눈치이지만 그래도 난 눈치 없이 아침을 꾸역꾸역 먹었다. 11시 30분에 깨워 달라고 부탁하고 잠깐 눈좀 붙였다.

 

  12시에 어제 전화를 했던 성용 누나를 만낫다. 화장을 하고 나왔는데 평소보다는 달라 보였다. 누나네 집에 가서 감자전을 먹고 94학번 명주누나를 만나서 경포대를 구경했다. 시간이 5시가 되자 난 문득 동해로 떠나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명주 누나랑 헤어지고 나서 자전거 체인에 기름칠을 할려고 시내를 돌아다녀 봤지만 자전거포가 없어서 그냥 오토바이점에서 공짜로 기름칠을 했다.

 

  쫙 펼쳐진 해안 도로는 정말 자전거 타는 맛을 느끼게 했다. 동해까지 반정도 가다가 동해는 멀고 날이 어두워져서 차를 세워서 얻어 탔다. 동해에 도착해서 형도한데 연락을 하자 형도는 1주일 동안 여자친구집에서 머문다고 했다. 사실상의 포기선언! 할수 없이 정선쪽으로 가다가 비도오고 날도 많이 어두워져서 여관에서 잤다.

 경포대에

동아리 선배인 성용 누나와 함

 

동해 ~ 정선 구간의 관문인 백복령 정상에서

다섯째날(6월 28일)

 

 아침 일찍부터 출발했다. 이제부터 나 혼자서 여행을 해야 한다. 2시간 정도 평탄한 길을 달리다가 오르막에 올랐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백곡령! 이 고개를 올라가는데 4시간 정도 걸렸고, 더더욱 끔직한 것은 5m 앞도 안보이는 안개 때문이다.

 

 이 고개를 오르면서 왜 이런 고생을 해야될까? 하는 회의가 들 정도로 엄청났다. 꼭대기에 올라가서 기념 촬영도 했지만 그때까지도 잠잠했던 발목이 엄청 부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스스로 불사신이라고 여기지 않은가! 이 정도 시련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넘었다. 그때 솔직히 백곡령만 넘으면 문제 없을줄 알았는데 큰너그네재, 작은너그네재를 넘을때는 백곡령보다는 못하지만 장난이 아니었고, 720m, 640m, 460m. 420m..... 고개를 그날 총 7개정도 넘었다.

 

 지친몸을 이끌고 정선에서 18㎞떨어진 아우라지에 도착했다. 거기서 고개를 넘으면서 간절히 생각났던 초코파이를 먹고 싶어서 사먹고 있는데 가게 주인 아줌마가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춘천에서 왔다고 했다. 아줌마는 자기딸도 춘천에서 강대를 다닌다며 딸이 춘천에 있는데 나를 그냥 보내기 딱하다며 자고 가라고 했다.

 

  물론 내가 거절할 이유가 없엇다. 이번 여행에서는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공짜를 많이 받은거 같다. 특히 백곡령을 넘고 3번째 고개를 넘었을 때 술마시던 아저씨들이 고기 좀 먹고 가라고 해싿. 거기서 내가 고기의 반을 먹어 치웠다. 왜냐? 그때까지 굶주려서... 아무튼 아우라지에서 자기로 했고, 그전에 아리랑의 발상으로 유명한 아우라지를 구경했다. 주인 아줌마는 나한테 산딸기주 3잔을 주며 편하게 자라고 하셨다.

아리랑의 아우라지에서

 

마지막날(6월 29일~30)

 

 지옥의 날이다. 아침 7시에 정선으로 출발했다. 정선까지는 가쁜하게 가고, 평창쪽으로 갔다. 고개를 가쁜하게 3개 넘었다. 이미 고개 넘는데에는 베테랑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2개의 고개는 히치를 해서 넘었다. 평창으로 가는 길은 정말 험하다. 엄청난 고개가 있기 때문이다. 일직선으로 이어진 고개가 있었는데 거기는 그늘고 없어서 그냥 땡볕에 올라가야 했다. 평창에 도착하고 나서 목표는 횡성. 횡성가는 길은 치악산이 끼어 있어서 그런지 험하다.

 

 그리고 나를 괴롭힌건 더위와 햇빛. 결국 난 아침과는 현저하게 다른 피부색을 보아야 했다. 지친몸을 이끌고 계속 전진하다 보니 큰 다리가 있었다. 햇빛도 피할겸 옷도 말릴 여량으로 다리 밑에서 침낭을 깔고 잤다. 그때 왜 거지들이 다리밑에서 자는지 그때 깨달았다.

 

  일어나니 저녁! 잠을 잤던 잠자리는 하도 처참해 보여서 사진을 찍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자전거 앞위에 손전등을 달고 갔다. 하지만 체력의 한계를 드러낸 관계로 차를 잡기로 하고 승합차 한대를 잡앗다.

 

 횡성에 도착하니 밤9시이다. 곧바로 홍천으로 갔다. 홍천까지 36㎞ 정도 되었는데 장난이 아니었다. 왜냐면 고개들은 다 각기 장단점이 잇다. 차라리 굵고 짧은 고개가 편하다. 그러나 홍천가는 길의 새마치 고개는 완만하게 오르막이면서 엄청나게 뻗어 있어서 짜증났다.

 

  기진 맥진해서 홍천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30분 거기서 자야할지 춘천으로 가야할지 고민할 때 나를 보던 경찰관이 자고가라고 했다. 그만큼 나의 모습은 처참해 보였나 보다. 그러나 24시간 현금출금기가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씩으로 춘천으로 가야했다. 그때는 너무나 힘들어서 만약 춘천이 가깝지 않았으면 포기했을 것이다.

 

  날은 너무나 어두워서 후래쉬를 키지 않으면 앞이 안보이고 그런 속에서 교통 사고도 날뻔했다. 가고 또 가고 그러다 지쳐서 잠이라도 자기도 했는데 그게 어디 쉬운일인가? 하지만 버스정류장에서 잤다. 비가 오는이유도 있지만 거지줄이 많아서 모기가 없었던 것이다.

 

  편하게 3시간 정도 잔 다음에 춘천으로 갔지만 그 동안의 여행의 피료 때문에 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차를 세워서 타기로 했지만 어떠한 차도 세워 주지 않았다. 춘천 사람들의 인심이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는가 보다. 2시간을 그로기 상태에 오면서 마지막 난관이 있었다. 바로 원창고개이다. 거길 넘고 나서 집으로 오니 7시! 짧고 굵은 최초의 여행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덥고 피곤해서 낮잠을 잤던 다리밑에서..

 

밤인데도 불구하고 태워주신 고마운 분들

 

드뎌 첫 여행이 끝났다. 나의 보금자리로 삼익